폰트 페어링 시작하기: 기본부터 응용까지

Adobe Fonts 한글 폰트 릴리스 기념 시리즈 아티클

이 시리즈 아티클은 2021년 Adobe Fonts에 많은 한글 폰트가 추가됨으로써 기존에 Adobe Fonts에 있던 라틴 폰트와 새로 추가된 한글 폰트의 섞어짜기를 여러분이 더욱 즐길 수 있도록 제공하는 폰트 페어링 정보 아티클입니다.

(아티클 속 이미지에서 사용된 폰트는 모두 Adobe Fonts에서 인스톨이 가능합니다)

 

기본: 차이와 공통점

폰트 페어링을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한글과 라틴 알파벳의 글자꼴과 문장구조의 차이 그리고 공통점을 이해해야 한다. 서로 다른 역사와 모양을 가진 문자를 섞어서 사용할 때 이런 점을 이해하지 않고 무턱대고 써버리는 경우 위화감과 기괴함마저도 자아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한글 폰트는 기본적으로는 고정폭*1 이다. 이는, 모든 글자가 같은 폭의 상자 안에 디자인된다는 뜻이다. 처음 활판 인쇄술이 한국에 들어와 발전되었을 때는 전각*2 즉 정사각형의 상자 안에 글자를 디자인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요 즈음은 산돌 고딕 Neo1 처럼 정사각형보다 조금 더 날씬한 직사각형 형태 (장체라고도 한다)로 폰트가 디자인되는 것이 유행이다. 이처럼 모든 글자가 같은 글자폭으로 디자인되는 점은 여전히 한글 폰트의 기본적 특징이다. 이번에 Adobe Fonts에도 추가된 AG 타이포그라피연구소AG 안상수체 2012 처럼 간혹 예외적으로 가변폭*3 인 한글 폰트도 있다.

 

*1 고정폭 (monospaced): 모든 글자가 같은 글자폭으로 디자인되는 것. 

*2 전각 (full-width): 폰트 혹은 활자를 만들 때의 정사각형 상자(바디). Em 이라고도 하며, 그 이유는 대문자 M이 대체로 전각으로 디자인되었었기 때문. 라틴 알파벳 구두점인 Em dash (—)는 전각 사이즈 길이의 대쉬이기 때문에 Em dash 라고 불린다. En은 반각을 뜻한다. 

*3 가변폭 (proportional): 고정폭과 반대로 모든 글자가 다른 글자폭으로 디자인되는 것.

<Image 01 - Hangeul structureA>

<Image 01 - Hangeul structureB>

한글 폰트와 달리 라틴 폰트는 일반적으로 가변폭으로 디자인된다. 대문자 M과 소문자 i는 서로 글자폭이 아주 다를 수 밖에 없고, V와 A, T 와 e등의 짝들은 글자가 입력될 때 커닝*4 이 필요한데, 고정폭 한글 폰트의 경우 글자꼴의 특징상 한글 글리프*5 사이에는 커닝 값을 따로 설정할 필요가 없다. 또한 예외적으로 코딩용 폰트 등은 정확한 행과 열을 구분하기 위하여 고정폭으로 디자인된다. 또, 폰트 자체는 가변폭으로 디자인되었으나 숫자만 고정폭으로 변경할 수 있는 오픈타입 기능*6 을 추가시키는 경우도 많다. 

또, 라틴 알파벳은 대문자와 소문자가 있으며, 소문자의 경우 글자 구조가 한글과 매우 다르다. 엑스하이트 (아래 그림 참조)를 기준으로 위로 뻗는 부분은 어센더, 아래로 뻗는 부분은 디센더라고 하는데, 이렇게 라틴 알파벳 소문자에는 위아래로 쭉쭉 다양한 모양이 있다.

 

*4 커닝 (Kerning): 특정 글자와 글자 사이를 좁히는 것. 대부분은 폰트를 디자인할 때 기본적인 커닝 값이 설정되어있으나, 유저가 직접 커닝 값을 조절할 수도 있다. 문장 전체적으로 글자사이를 좁히는 것은 트래킹이라고 하며, 보통 폰트 정보에는 없고 타입세팅 시에 유저가 따로 설정한다.

*5 글리프 (Glyph): 폰트를 이루는 글자를 뜻함. 예컨대 “가”, “ㄱ”, “.”, “%”, “ (공백)” 등 모두 글리프의 하나이다.

*6 오픈타입 기능 (OpenType Feature): 오픈타입 폰트에서 탑재가 가능한 기능들. 위에 기재된 숫자나 글자의 형태를 변경시키는 것은 Stylistic Set 에서 가능하다. 이 외에도 합자 (ligature)나 앞뒤 문맥에 따라 다른 모양의 글자를 가져오는 기능 (contextual alternates) 등이 있다.

<Image 02 - Latin anatomy A>

<Image 02 - Latin anatomy B>

<Image 03 - Latin monospaced>

<Image 04 - Latin structure>

한글은 고정폭이기 때문에 모든 글자가 깔끔하게 나열이 되고, 라틴 알파벳은 가변폭에 더하여 어센더, 디센더의 특징이 있기 때문에 상하좌우로 다양한 움직임이 존재한다. 이렇게만 보면 너무나도 다른 두 문자를 어떻게 조화롭게 폰트 페어링을 할 수 있을까 싶겠지만, 다행히도 한글과 라틴 알파벳에는 강력한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구두점과 띄어쓰기라는 시스템을 같은 것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한글 폰트 안의 구두점은 라틴 알파벳과 같이 가변폭으로 디자인되며, 커닝 값도 설정되어있다 (오래된 폰트에는 커닝 값이 설정 안 된 경우도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다만 한글 폰트에는 라틴 알파벳과 공통적인 구두점에 더하여, 동아시아권에서 사용하는 전각 구두점 또한 탑재되어 있으며, 이 또한 흔하게 사용되기 때문에, 타입세팅 시에는 이렇게 다양한 문자와 구두점 모두 유념해야 한다.

<Image 05 - punctuations>

응용하기: 미세조정을 해보자

이제 구조도 이해했고 그럼 폰트 지정만 하면 되겠다! 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더 좋은 폰트 페어링을 위해서는 베이스라인, 사이즈 등의 미세조정이 필요하다. 앞서 말했듯이 한글과 라틴 알파벳은 이러한 구조의 차이 때문에 같은 글자 사이즈라도 시각적으로 크기가 달라 보일 때가 있다. 

 

필자는 대체로 라틴 알파벳을 한글의 105% 정도 크게 지정하지만, 이 또한 폰트에 따라, 세팅하는 사이즈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그때그때 시각적으로 맞춰야 한다. 폰트 사이즈에서 조정해주는 것도 가능하고, 가로세로 비율을 조정해주는 것으로도 가능하다.

또, 라틴 알파벳은 베이스라인을 기준으로 글자가 나열되지만, 한글은 전각 상자를 기준으로 가운데에 글자의 무게중심이 실려있기 때문에, 그대로 타입세팅을 할 경우 라틴 알파벳이 한글보다 아래로 내려앉은 것 같은 느낌을 줄 수도 있으며, 인용부호나 하이픈 등 구두점의 위치가 달라지기 때문에, 이 또한 시각적 조절을 해주어야 한다.

<Image 06 - adjustments>

더 깊숙이 바라본다면, 글자사이 조정 또한 “즐거운 강박”의 포인트이다. 근래 출시되는 한글 폰트는 글자폭이 전각보다 좁은 장체형 폰트가 많다는 언급을 앞서 하였는데, 그로 인해 글자사이 또한 매우 좁게 보이는 경우도 있다. 라틴 폰트는 폰트에 따라 알맞은 글자사이가 천차만별로 다른데, 만약 페어링한 한글 폰트와 라틴 폰트의 글자사이 느낌이 다르다면, 따로 조정해주는 것이 더 좋은 타이포그래피의 한 걸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심화 과정: 합성글꼴을 사용해보자

이렇게 미세한 조정을 하나하나 어떻게 다 한다는 말이야? 라고 패닉이 올 법도 한데, 그럴 때 사용할 수 있는 요긴한 솔루션이 있다. 바로 인디자인의 “합성글꼴 (Composite Font)”이라는 기능인데, 합성글꼴은 말 그대로 원하는 폰트를 합쳐서 (합성해서) 나만의 폰트 세트를 만들 수 있는 기능이다. 한글, 라틴 (로마자), 구두점, 숫자 (번호) 등 카테고리별로 원하는 폰트와 (글자사이를 제외한) 미세조정이 가능하고, “사용자 정의”로 들어가면, 원하는 글리프 하나씩 지정이 가능하다.

<Image 07 - composite font>

하지만 지금의 합성글꼴 기능은 한글 타이포그래피 환경에 부족하거나 적합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 현재 어도비에서는 합성글꼴 및 한글 타이포그래피 환경 기능 향상을 위해 다양한 유식자분들에게 의견을 물어가며 리서치 및 개발 준비중이다.

 

글자체와 서풍의 변천

마지막으로 한글과 라틴의 차이점 중 글자체와 서풍의 변천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싶다. 라틴 알파벳은 모두 알다시피 현재의 모양으로 처음 자리 잡게 된 것은 트라야누스 원주*7 에 새겨진 대문자 라틴 알파벳이 시초였다. 라틴 알파벳도 그렇지만 중국의 한자 등 많은 문자가 붓글씨 형태의 문자 모양으로부터 발전을 시작하는데, 이는 스타일러스*8 의 형태가 주로 펜이나 붓이었으며, 새겨지는 매체 또한 종이나 지점토 등 필적이 강하게 남는 재질이었기 때문이다. 라틴 알파벳의 글자체는 이렇게 붓글씨로 시작하여 더욱 정돈된 세리프체, 그리고 산세리프체로 발전을 해왔다.

<Image 8 - trajan column>
From Wikipedia

그러나 한글의 시초인 훈민정음을 보면, 현재의 돋움체 혹은 둥근 돋움체에 가까운 글자체를 가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가장 강력한 설은, 1443년에 창제되어 1446년에 처음 국민에게 반포된 새로운 문자인 한글을,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모든 백성이 쉽고 간편하게 배우고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땅바닥에 나뭇가지로 그려도 소통이 될 수 있도록 이러한 글자꼴로 디자인되었다는 설이다. 붓글씨 혹은 후의 바탕체와 같이 획의 일부 끝에 특징적인 모양이 있었다면, 새롭고 익숙하지 않은 문자를 국민들이 잘못된 형태로 이해해버릴 수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 필자가 덧붙이고 싶은 설은, 사실 조선은 구텐베르크 활판 인쇄술이 발명되기 약 70년 전에 이미 활판인쇄의 기술을 갖고 있었다*9. 납활자 대신 동활자였고, 구텐베르크 방식보다 효율성이 떨어져 정착하지 못하고 도태되었지만, 활판인쇄의 기본적인 구조와 방식에 이해가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활자로 만들기 편한 글자꼴로 자연스럽게 한글 개발이 된 게 아닐까? 라고 필자는 로망을 가져본다.

<Image 9 - hoonminjeongumA>
From National Hangeul Museum

*7 트라야누스 원주 (Trajan’s Column):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를 기념하기 위해 건설된 기둥. Eric Gill 등 많은 타입 디자이너들이 타입 디자인의 영감을 얻기 위해 직접 이 원주를 보러 가곤 했었다고 한다.

*8 스타일러스 (Stylus): 필기구를 뜻함.

*9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 1372년에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찍어낸 불교서적 “직지심체요절”이 증거로 남아있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과 국립중앙도서관에 상하권 1책이 각각 소장되어 있다.

 

폰트 페어링의 즐거움

전혀 다른 역사의 길을 걸어온 문자들을, 서로 어울리게 글자체를 고르고 미세조정을 하며 섞어 쓰는 행위에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아마 많은 타이포그래퍼와 편집 디자이너들이 이렇게 글자의 매력에 사로잡혀 이 세계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된 게 아닐까 싶다.

폰트를 고르고 쓰는 즐거움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하여 이 시리즈 아티클이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다음 아티클 (3월 중순 업데이트 예정)에서는 합성글꼴 사용에 관한 비디오 튜토리얼과 함께 실전적인 폰트 페어링 예시를 소개드릴 예정이다.

 

저자 소개

김민영 (Min-Young Kim). UI, UX & 타이포그래피 컨설턴트.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 전공을 거쳐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석사 논문에서는 다국어 타이포그래피의 역사와 근현대 섞어짜기 샘플 연구를 기반으로 CJK-Latin 다국어 섞어짜기의 새로운 폰트 세트를 제안했다. 

한/미/일 3개국 문자와 언어를 구사하며 얻은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 타입 파운더리 모리사와, 폰트웍스에서 일했고, 현재는 일본 도쿄에서 프리랜서로 구글, 어도비 등과 함께 일하며 타이포그래피의 즐거움과 아름다움, 필요성에 대해 널리 알리는 중이다.

Adobe, I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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