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트 페어링 실전: 바탕과 세리프

Adobe Fonts 한글 폰트 릴리스 기념 시리즈 아티클

이 시리즈 아티클은 2021년 Adobe Fonts에 많은 한글 폰트가 추가됨으로써 기존에 Adobe Fonts에 있던 라틴 폰트와 새로 추가된 한글 폰트의 섞어짜기를 여러분이 더욱 즐길 수 있도록 제공하는 폰트 페어링 정보 아티클입니다. 지금까지 올라온 아티클들은 디렉토리에서 모두 열람이 가능합니다.

(아티클 속 이미지에서 사용된 폰트는 모두 Adobe Fonts에서 인스톨이 가능합니다)

 

바탕체와 세리프폰트로 폰트 페어링 실전

바탕체는 명조체, 부리체라고도 불리며, 라틴 폰트에서는 세리프 혹은 세리프체라고 불린다. 세리프는 글자 획 끝에 부가적인 획(부리라고도 한다) 혹은 특징적 라인이 규칙적으로 나타나는 글자꼴을 말한다. 붓이나 만년필로 글을 쓰던 시절의 글자꼴 흔적에서 유래하여 많은 변화와 발전을 거쳐 현재의 바탕체, 세리프체가 되었다. 모든 문자권에서 바탕 혹은 세리프 스타일의 서풍이 있는 것은 아니나, 다행히도 한글과 라틴은 어느 정도 공통되는 특징을 가졌기에 폰트 페어링을 시도해보기 용이하다.

바탕 혹은 세리프체는 주로 소설처럼 긴 글의 인쇄물에 사용되며, 그 역사가 길다. 19세기 후반에 산세리프체가 나타나기 전까지 거의 모든 광고와 인쇄물은 세리프 혹은 슬랩세리프*1 체로 만들어졌으며, 그만큼 세리프체 안에서도 서풍이 전혀 달라 보이는 것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반면에 한글은 문자 자체도 만들어진 지 약 600년의 젊은 문자이기도 하지만, 한글의 바탕체가 만들어진 것 또한 라틴의 세리프에 비해 최근이며, 라틴 폰트에 비해 스타일도 많지 않다. 한글 폰트와 라틴 폰트 어느쪽부터 먼저 정하더라도, 서로에게 위화감없이 잘 어울리는 스타일의 바탕/세리프체를 알맞게 찾아야한다.

 

*1 슬랩세리프 (Slab Serif): 라틴폰트의 서풍 중 하나로, 세리프 부분이 일반적인 세리프 폰트보다 더 크고 굵직한 것. 이집션(Egyptian)이라고도 불린다.

 

한글 폰트부터 정할 때

지난번 폰트 페어링 실전: 돋움과 산세리프 편에서처럼, 글줄 안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이 한글이기에, 한글 폰트부터 먼저 정하고 그에 맞는 라틴 폰트를 찾아보자. 바탕체는 본문용으로 가장 많이 쓰이기 때문에, 그에 걸맞은 한글 폰트 2종을 선택했다. 우선 먼저, 전통적인 글자 골격에 현대적인 재해석으로 각지고 개성적인 부리를 가진 것이 인상적인 Sandoll 제비2 부터 살펴보자.

sandoll jebi

Sandoll 제비2 는 앞서 말했듯이 두 가지의 특징이 있다. 전통적인 골격과, 현대적인 재해석. 이 두 가지가 너무나도 균형있게 공존하고 있기때문에, 각자의 특징에 맞는 정반대의 특성인 라틴폰트 2종을 맞춰보았다. 첫 번째로 맞춰본 Sabon 은, 완전히 전통적이라고 하기에는 깔끔하게 떨어지는 마무리와 섬세하고 유연하게 움직이는 획 두께 대비가 특징적이다. Sabon 은 사실 그 태생부터가 유연하다. Sabon 이 만들어졌을 당시 1960년도에는 활판인쇄기 회사가 크게 2가지가 있었는데, 각자 인쇄기의 구조가 다르고 까다로웠기에, 같은 이름의 서체*2더라도 인쇄기마다 디자인이나 세밀한 수치가 달랐다. 이 때문에 인쇄소들은 많은 혼란을 겪었고, 관리도 어려웠기 때문에, 독일의 인쇄소들이 타이포그래퍼이자 타입 디자이너인 얀 치홀트Jan Tschichold에게, 어떤 인쇄기에서도 문제없이 조판이 되는 본문용 서체를 의뢰했다. 그렇게 태어난 Sabon 은 아주 전통적인 본문용 올드스타일 세리프인 Garamond 의 이미지를 가지면서도, 다양한 인쇄기에서도 활약할 수 있도록 유연한 골격을 가지고 있다. Sandoll 제비2 와는 만들어진 시기도 너무 다르기에 “현대적 재해석"을 반영한 방식은 조금 다르지만, 각 폰트가 가진 배경의 의미적 부분에서 통하는 부분이 있다. 시각적 어울림 뿐만 아니라, 이렇게 폰트 속의 의미나 배경을 기준으로 폰트를 고르는 것도 폰트 페어링의 묘미이다.

두 번째로 고른 라틴 폰트인 Skolar 는 Sabon 에 비해 아주 현대적인 폰트이다. 획 두께 대비가 적으며 세리프가 부드러운 갈고리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세리프가 꽤 대담하게 그려져있음에도 강렬한 인상이 되지 않고 자연스레 녹아들 수 있는 건 이러한 특징 때문이다. 딱 봐도 Skolar 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개성이 있지만, 부드럽고 묵묵하고 어딘가 따뜻한 인상마저 준다. Sandoll 제비2 또한 획 두께 대비가 적고 개성적인 부리가 있으나, Skolar 보다 날카롭고 스마트한 인상이기에, 여기에 Skolar 를 페어링해줌으로써 전체적인 조판 인상을 더 트렌디하고 따뜻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

 

*2 서체: 이 때는 디지털시대가 아닌 활자시대이기때문에 폰트가 아닌 서체라고 부른다

 

라틴 폰트부터 정할 때

두 번째 한글 폰트 예시를 보기 전에, 먼저 라틴 폰트부터 고르는 예시를 살펴보자. 라틴 폰트로는 개성이 매우 강한 베네치안 올드스타일Venetian Old-style 세리프체인 Vendetta 를 골라보았다. 올드스타일 세리프체 자체가 매우 전통적인 글자꼴이지만, 베네치안 올드스타일은 그 특징을 더 강력하게 해준 것으로 이해하면 적당할 것이다. 넓은 펜촉의 만년필로 쓰던 느낌이 강렬하게 남는 디테일한 골격 디자인은 간혹가다 퉁명스러울 만큼 무딘 인상을 주기도, 강한 획 두께 대비로 날카로운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Vendetta 에 페어링할 폰트를 찾았을 때, 두 가지 후보가 떠올랐다.

vendetta

첫 번째는 강한 획 두께 대비와 복고풍의 글자꼴이 특징적인 J송명이다. 컨셉도 반영 방식도 Vendetta 와 매우 흡사하고, 두 가지의 면모가 보이는 점도 공통점을 느꼈다. 물론 한글의 문자 특성상 라틴과 아주 같은 디자인 반영을 하기엔 어렵고, 또 같이 개발된 패밀리 폰트도 아니기에 다른 점도 많지만, 만들어진 나라, 회사 그리고 시기가 다른 두 폰트가 이렇게 많은 공통점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신비롭다. 이러한 발견 또한 폰트 페어링의 큰 즐거움 중 하나이다.

두 번째는 비교적 새로운 폰트인 Noh 옵티크 디스플레이이다. J송명보다 훨씬 더 강렬하고 센 가로세로 획 두께 대비가 아주 인상적인데, 이 옆에 있으면 Vendetta 마저도 획 두께 대비가 적고 묵묵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개성적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Vendetta 가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다. 전체적인 조판에서는 Noh 옵티크 디스플레이의 쨍한 날카로움을 중화하면서, 한글에서의 Noh 옵티크 디스플레이의 개성이 충분히 발휘되게 뒷받침까지 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라틴 폰트부터 정할 때: 슬랩세리프 버전

슬랩세리프는 본래 라틴 폰트 특유의 서풍이며 한글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세리프체의 발전 단계에서 산세리프가 유명해지기 전 즈음에 혜성처럼 나타난 서풍으로, 세리프가 일반 세리프체보다 더 크고 벽돌처럼 획 끝에 붙어있는 것이 특징이다. 처음에는 주로 제목용으로 인상적인 장면에서 사용이 되었다. 현재도 많은 분야에서 사용이 되며, 본문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슬랩세리프체 종류도 다양해졌다. 라틴 폰트에서 자주 쓰이는 서풍이고 세리프체에 속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한글 폰트에 없는 서풍이더라도 폰트 페어링 해야 할 때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럴 때 예시가 될 수 있도록 준비해보았다. 라틴 폰트로는 유명한 Roboto 의 슬랩세리프 버전인 Roboto Slab 으로 살펴보자.

한글 폰트에는 슬랩세리프라는 서풍은 존재하지 않지만, 비슷한 컨셉의 바탕체는 간혹 찾아볼 수 있다. Rix 락 Serif 는 그 대표적인 예인데, 부리가 일반적인 바탕체보다 단단하고 규칙적으로 획에 붙어있어 일종의 “한국적" 슬랩세리프 느낌을 준다. Roboto Slab 과 맞춤으로써 한국적 슬랩세리프라는 새로운 인상을 더욱 확고하게 갖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항상 알맞은 한국적 슬랩세리프의 바탕체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럴 땐 고른 라틴 폰트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돋움체를 찾아주는 것이 적절하다. Noh 소리체의 경우, 골격은 일반적이지만 기하학적으로 이루어진 디테일한 디자인 특징이 Roboto Slab 의 획 두께 대비가 거의 없는 단순함과 큰 속공간하고 잘 어우러졌다. 이렇게 맞춰보기 전까지는 어울릴 줄 몰랐으나 막상 페어링해보니 환상의 조합이 될 수도 있다.

 

문자 종류별로 다양한 폰트를 섞어서 페어링해보기 

한글 폰트를 먼저 정하고, 라틴 알파벳뿐만 아니라 숫자나 구두점 등 더 다양하게 폰트를 섞어 페어링하는 방법도 있다. 전통적 본문용 바탕체인 AG 최정호 스크린을 사용하여 다양한 폰트를 페어링해보자.

AG 최정호 스크린은 AG 최정호체를 기반으로 화면에서도 보기 쉽도록 부리를 단순화하고 가로세로 획 두께 대비를 줄인 폰트이다. 현대 한글의 바탕체/명조체의 기초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 타입 디자이너 최정호의 생애 마지막 서체디자인으로, 우아하고 전통적인 골격이 특징이다.

이러한 AG 최정호 스크린의 특징에 맞는 라틴 폰트로써 Adobe Garamond 와 Plantin 을 골랐다. Adobe Garamond 는 라틴 세리프체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타입 디자이너 Garamond 의 디자인을 현대식으로 살린 폰트이고, Plantin 또한 Garamond 의 뒤를 이어 올드스타일 세리프체의 확립에 크게 기여한 출판인 Plantin 의 이름을 딴 전통적인 올드스타일 세리프 폰트이다. Adobe Garamond 하고는 처음부터 한 폰트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지만, Garamond 디자인의 특성상 속공간이 너무 좁아 한글과 함께 조판했을 때 라틴 알파벳의 가독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Plantin 은 화면용으로 재설계한 AG 최정호 스크린보다 획 두께 대비는 살짝 더 크지만, 속공간과 글자폭이 넓은 것이 한글의 특징과 잘 어울러진다. 하지만 구두점의 디자인에 우아함이 부족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 두 폰트를 함께 AG 최정호 스크린에 페어링 해보았다. 라틴 알파벳에는 Plantin 을, 둥근 곡선이 많이 사용되는 구두점(따옴표, 쉼표, 마침표)에는 Adobe Garamond 를 페어링했다. 앞서 말했듯이 Adobe Garamond 는 한글에 비해 작기 때문에, 두께도 Bold 로 세팅하였다.

구두점 안에서도 따옴표와 쉼표 등 정해진 특정 문자만 다른 폰트로 지정하는 법은, 지난 폰트 페어링 실전: 돋움과 산세리프 아티클에서 보여드린 어도비 인디자인에서 합성글꼴 만들기 동영상을 참고 바란다.

폰트 페어링의 묘미 

폰트 페어링은 단순히 시각적으로 어울리는 폰트를 골라 맞추는 것뿐만이 아니다. 이번 아티클 예시들에서 보았듯이, 폰트 속 의미나 배경을 바탕으로 페어링을 하는 것도, 시각적으로는 다른 서풍인 폰트들을 위화감 없이 잘 어울리게 맞추는 것도 폰트 페어링이다. 사용할 각 폰트를 서로 잘 살펴보고, 이해하고, 다양하게 테스트해 보며, 새로운 조합을 찾는 것이 폰트 페어링의 진정한 묘미라고 할 수 있다. 이 아티클을 통해 독자 여러분이 더 다양한 폰트 페어링을 시도해보고 즐길 수 있는 받침돌이 되길 바란다.

저자 소개   

김민영 (Min-Young Kim). UI, UX & 타이포그래피 컨설턴트.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 전공을 거쳐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석사 논문에서는 다국어 타이포그래피의 역사와 근현대 섞어짜기 샘플 연구를 기반으로 CJK-Latin 다국어 섞어짜기의 새로운 폰트 세트를 제안했다. 

한/미/일 3개국 문자와 언어를 구사하며 얻은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 타입 파운더리 모리사와, 폰트웍스에서 일했고, 현재는 일본 도쿄에서 프리랜서로 구글, 어도비 등과 함께 일하며 타이포그래피의 즐거움과 아름다움, 필요성에 대해 널리 알리는 중이다.

Adobe, I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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